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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티스트를 만나는 방법

최종 수정일: 2023년 6월 26일


오래된 옛날, 첫 눈에 반해버린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대규모 박람회장을 돌다 마주쳤는데 보자마자 감전된 듯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뒤돌아보는 듯한 여인의 그림이었는데, 꿈틀거리는 선과 그 여인의 눈빛에 단숨에 매료되었습니다. 주위가 다 사라지면서 오직 그 그림만 보였어요. 시간이 멈추며 나와 그 여인만 존재했지요. 인파에 떠밀려 걸어나가면서도 힐끔힐끔 뒤돌아보길 반복하다 결국 그 화가의 그림집을 구입했습니다. 에곤 쉴레라는 화가였어요.


꽤 세월이 흐른 후, 그런 작품을 하나 더 만나게 되었습니다. 뼈대만 남은 듯한 여인의 거대한 형상 앞에서 얼어붙은 듯 한참을 서 있었어요. 나를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자코메티의 '거대한 여인'이란 작품이었어요. 몇 년 후 자코메티의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친구와 아이들과 함께 보러 갔지만 이미 익숙해져서일까요? 예전의 그 감동을 다시 맛보지는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작품과의 대화


강렬했던 그 기억들 때문일까요? 작가보다, 아티스트보다는 작품을 먼저 만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맘에 와닿는 작품이 있길 내심 기대하면서요. 아티스트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알아봅니다. 이런 작품을 만든 사람이 넘 궁금해질때쯤에요. 한 눈에 반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많이 좋아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장 줄리앙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아이들과 나눈 대화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림 출처 :www. jeanjullian.com)



흰둥이가 점박이 무리들 영역으로 와서 소외되지 않고 잘 지내보려 이를 악물고 점을 그려넣고 있어요. 붓을 앙 문 입을 한 번 보세요.
101마리 달마시안이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서 스스로 점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점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니예요. 자신의 점들이 맘에 안 들어서 하얀 물감으로 지우고 있는 중이네요.






커피가 "날 정말로 먹을 거야??" 급정색하고 있어요.
빨대로 살짝 그어 일자 입모양을 웃는 모양으로 바꿔 주고 싶어요.
공원 같은 곳에 가면 볼 수 있는, 얼굴을 들이밀고 사진 찍는 스팟이예요.얼굴 위 하얀 부분은 이 사람의 키가 조금 작아서 남는 부분인 거구요.
한 남자가 카페로 들어와서 커피를 주문했어요. 의자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려는데 오늘 너무 힘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커피에서 봐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거죠.
카카오농장의 부조리를 알리는 사회적 메시지예요.





 


작품의 재구성





장 줄리앙의 이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과 얘기를 나눠 봅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공부가 전부인 일상에 지친다는 친구도 있고, 월요일에 좋아하는 스케줄이 있어서 아직 월요병을 앓아 보지 않은 친구도 있습니다.월요일이라는 사다리를 힘겹게 올라가는 남자를 보며 이 작품을 재구성해보자고 제안해봅니다.



< 미션 >

"이 남자의 표정을 잘 봐 둬. 어떤 상태일까? 이 남자만 오려내서 작품을 재구성해보는거야. 뭐, 이 남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고. 단, 원본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 즉 남자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재구성해보는거야."







7명의 손님들

백보빈 (만11세)

언젠가부터 우리 집에 매일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중략)


잘 가 일요일. 내일은 어떤 주말이 오니?

내일은 평일이야. 그러니까 월요일이 오는 거지.

일요일의 말에 월요일이 나에게 시켰던 수많은 일들이 머리 속에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어떻게든 일요일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연합군의 공격

손정우(만10세)

잘 놀고 있는 일요일의 손정우를 '월화수목금'연합군이 부르고 있어요 . 침공하는 연합군의 우두머리는 바로바로 엄마예요. 하하.




competition

이하온(만10세)


기를 쓰고 남들과 경쟁해서 성공했는데, 젤 위로 올라갔는데, 막상 가보니 아무것도 없는거죠. (눈을 동그랗고 크게 뜨며) 정작 소중한 것은 그 곳에 없는 거예요!!!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남자 보이시죠? 간절하게 외치는 거예요.

"다들 돌아가, 여긴 아무 것도 없! "





운명의 여신들

신주하(만14세)


평소에 보고 싶던 공연이 있었다. 하지만 공연이 아쉽게도 끝나버려 관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번엔 꼭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예매 창을 열었다.시간은 5시 53분, 예매 시작은 6시, 7분 정도가 남아있다.


드디어 6시가 되었다. 접속자가 많은지 사이트가 버벅거렸다. 다행히 좌석 선택을 완료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 하는데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알림창이 떴다. 다른 자리를 눌러 봐도 전부 같이 메시지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취소표라도 하나 얻으려 한참을 기다려봤다. 인기가 워낙 많았는지 몇 십 분을 기다려도 나오질 않았다. 이번에 못 보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지면서 온몸이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 먹었는지, 티켓팅에 실패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눈앞이 컴컴해지면서 정신을 서서히 잃는 듯했다. 어디선가 알람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눈을 떴다. 해는 이미 하늘 높이 걸려있었고, 난 어딘지 모를 방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방에 창문은 없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길고 어두웠지만 어째서인지 어둠 속은 훤했다. 한발 내디디려는 순간 사이렌이 울렸다. 알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고 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을 무시하곤 앞으로 내달렸다. 쾅, 하고는 유리 벽에 부딪혔다. 유리 벽 너머에는 세 여인이 있었다. 한 명은 실을 뽑아내고, 한명은 그 실을 감고, 나머지 한 명은 그 실을 가위로 잘라내는 행동을 반복했다. ‘Μουράι’. 모이라이, 운명의 여신들이었다.


벽면의 스크린이 훤히 켜졌다. 스크린은 내 손보다 조금 컸지만 온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다른 이들의 삶이 스크린에 비쳐 지나갔다. 알 수 없는 말들이 반복되었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

그 말을 세 번 정도 듣고 나니 다시 세상이 회전했다. 밖은 해가 뜨기 전 새벽이었다. 어두웠다.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다 꿈이었던걸까?










 



공원 전시 기획


낭뜨 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장 줄리앙의 기획전시 Filli Viridi 를 감상한 후, 아이들도 자연에서의 전시를 기획해 봅니다. 직접 자연으로 나가서 셋팅을 하며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자연사진을 배경으로 작업하기도 합니다. 영상으로 만드는 친구도 있고, 직접 클레이로 캐릭터를 만들어 집 화분을 배경으로 삼기도 합니다. 작품 하나하나 아이들의 정성과 개성이 묻어납니다. 캐릭터를 창조해내고 스토리를 떠올리고 필요한 자료도 찾아보며 고민했을 아이들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잘 쌓여 꽃을 피우길 바래 봅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업으로 하며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고유한 자신만의 개성을 잘 살리며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낭뜨공원 기획전시

이선호(만11세)




























도와줘

뛰어가다 물 속으로 빠질 위기에 처한 엄청나게 큰 아이

























살려줘

달려가다 발이 걸리면서 넘어져 머리가 땅에 박혀버렸다.





















양보해줘

풀 3개가 같은 곳에서 동시에 태어났다.





















편안하다

다리를 길게 늘려 물침대를 만들어 잠을 자는 사람





기분과 색깔

김지유(만10세)



















도심 속 자연요정들

백보빈(만11세)




우리 주변에는 인간 말고도 다른 생명체가 많이 살고있다. 예를 들어서 ‘스몰피플 small people’ 같은 생명체. 스몰 피플이 누구인가 하면 말 그대로 작은 사람들이다. 스몰피플은 도시 속 자연에서 살고있는 도시 요정이다. 그러니까 도시에 있는 자연(공원, 화단 등) 속에서 사는 요정이란 말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요정들은 도시보다는 자연과 더 어울린다. 하지만 스몰피플은 도시 요정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리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스몰피플은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된다. 눈에 띄는 순간 그들은 재가 돼, 순식간에 사라지고만다.


스몰피플이 하는 일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도시 인간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고, 두번째는 도시의 환경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의 일을 도와주는 스몰피플들은 인간들과 근접한 화단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도시의 환경 일을 도와주는 스몰피플은 공원에서 거주한다.


그럼 이제 스몰피플이 자세히 무슨 일들을 도와주는지 알아보자. 먼저 인간들의 일을 도와주는 스몰피플들은 대부분 직장인들을 도와주는데, 직장인들이 힘들 때 마법을 일으켜, 직장인들을 자연 속으로 데리고 온다. 자연 속에 온 인간들은 여기가 어디인지 두리번 거리기도 전에, 눈을 꼭 감고 자연 속에서 가만히 서 있다. 그럼 인간들은 자연 속에서 커다란 위로와 안정을 되찾고 간다. 또 직장인들이 회의를 하다가 주장이 너무나 달라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로, 스몰피플들은 자연 속으로 인간들을 데리고 간다.

이제 도시의 환경을 도와주는 스몰피플들의 일을 살펴보자면, 이 스몰피플들은 도시가 너무나 더러워지지 않게 도와준다. 인간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주변 쓰레기를 치우고, 마법을 부려서 공기를 조금이나마 좋게 만든다. 그런데 스몰피플들이 환경을 좋게 만드는 것보다, 인간들이 환경을 망치는 일이 더욱더 많고 커서, 환경이 딱히 좋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금 스몰피플들은 도시에서 많이 사라지고 있다. 스몰피플들은 그나마 도시에 있는 자연 덕분에 살고 있는데, 인간들이 그마저 자연도 망가뜨리고 있다. 건물들을 세우고 쓰레기를 아무 곳에나 버렸다. 스몰피플은 인간들에게 항상 도움만 주는데, 인간들은 스몰피플들을 괴롭히기만 한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주 착한 인간들 중 극소수는 스몰피플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한 티를 내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 지구가 아파하고 있다고 하며, 자연을 지금이라도 지키자고 하고 있다. 그래서 스몰피플을 모르는 사람들도 환경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자연을 지켜가고 있다. 스몰피플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작가가 궁금해진다면





장 줄리앙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비주얼 아티스트로 1983년생이다. 외모는 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센트럴세인트마틴스예술대학을 졸업했고, 순수회화부터 그래픽 작업, 패키징, 가구, 의류,전시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부모님들도 예술쪽 일을 하시며, 장 줄리앙 또한 섬세하고 탁월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다. 올 봄 알부스 갤러리에서 열린 '다시 안녕'이란 개인전에서 그의 개인적인, 섬세한 그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그림이 아닌 대중을 위한 그림이라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며 심플하고 위트 있는 작업들을 주로 한다. 그의 홈페이지에 가면 다양한 작업들을 볼 수 있으며, 가까운 곳을 찾으신다면 동네 파리바게트의 fresh milk 패키지에서도 그의 위트를 확인 할 수 있다.


글 | 꿈샘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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