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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미술관 · 앙리 마티스


문학과 비문학이 예술에서 만나다




시 읽는 미술관 수업소개

시와 그림은 닮았습니다. 예술을 문자로 적으면 시, 시각언어로 표현하면 그림입니다. 시는 이미지/심상을 떠올리고, 그림은 시와 같이 함축적 의미를 품습니다. 두 예술은 모두 인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가르쳐줍니다. 또한 시대를 담아내는 역사의 조각들입니다. 무엇보다 예술은 새로운 관점, 넒은 시각, 깊은 사유를 길어내 줍니다.

[시 읽는 미술관] 수업에서는 서로 닮은 시와 그림을 엮어 학생들과 함께 깊이 감상합니다. 문학 시와 명화, 비문학 책과 칼럼, 기사 등을 다양하게 접하며 예술을 향유하는 길을 안내합니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감상하며 사유하고 표현하는 과정 가운데 삶의 귀한 가치 발견합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심미안과 중요한 것을 꽤뚫어보는 통찰력, 능동적이며 유연한 태도를 배웁니다. 예술을 곁에 두고 향유하며 얻는 풍요를 맛보는 시간 되기를 기대합니다.


기쁨을 선택하다

앙리 마티스의 삶과 작품

로버트 슐러 <절벽 가까이로 부르셔서>로버트 슐러 <절벽 가까이로 부르셔서>


기쁨을 선택하다

with 앙리 마티스

기쁨은 순간의 감정을 넘어 삶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상황, 같은 환경 속에 있어도 절망을 선택하느냐, 기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삶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결정은 관성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든 적용되겠지요. 그렇기에 지금 어떠한 방향의 선택지를 붙들지 안내가 필요합니다. 잔소리나 염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요. 대신 예술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술 속에서 깨닫고 느끼며, 삶의 방향과 자세를 스스로 다잡아보는 시간 되기를 소망하며 <기쁨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도입은 몇 가지 상황을 상상해보며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상황1) 하고 싶은 일을 아버지가 강하게 반대하신다.

상황2) 내가 사는 지역에 전쟁이 일어났다.

상황3) 우리 집이 폭격당했다.

상황4) 큰 병에 걸렸다.

상황5) 건강 문제로 좋아하는 일, 평생 해온 일을 못하게 되었다.

상상해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어려워집니다. 상황들 속에 매몰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은 절망이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화가 앙리 마티스의 이야기입니다. 앙리 마티스의 그림들 속에서 혹시 '절망'이란 단어를 찾으실 수 있나요?


앙리 마티스 (1869-1954)

20세기 야수파 / 프랑스

원색적인 색감과 장식적 요소, 경쾌한 느낌의 그림들. 되려 그의 작품들은 '해피 아트'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예술가는 어떻게 절망의 상황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행복을 전하는 예술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요?

"물감 상자를 받아 든 순간, 내 운명임을 느꼈다."

앙리 마티스는 법을 공부했습니다.

변호사 시험도 합격해서 법률사무소에 다니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됩니다.

지금 맹장염은 가볍게 수술하고 회복하지만, 100년 전 이때에는 맹장염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여러 날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마티스에게 어머니는 그림 도구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지요.

물감 상자를 받아 든 순간, 운명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후 법조인을 그만두고 화가가 되고자 합니다.

부모님들이 그를 기쁘게 응원해줄 수 있었을까요?

역시나 예상대로 아버지의 큰 반대에 부딪힙니다.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고전적인 미술을 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아 미술 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나는 테이블을 그리지 않는다. 테이블이 나에게 주는 정서(감정)을 그린다."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라.

영감은 열중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

마티스는 아침부터 밤까지 열심히 그렸습니다.

열정을 다해 열중하며 점점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하지요.

학교에서 배우는 고전적인 미술보다 자신의 감정, 정서를 표현하는 미술을 하게 됩니다.

점점 물체는 단순화되고 색은 알록달록해지는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그림을 신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하는데 이때 마티스의 라이벌이자 절친이 되는 피카소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피카소의 말처럼 사진기의 발명으로 더 이상 정확하게 묘사하는 그림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때로는 사진이 진실보다 오해와 왜곡을 담기도 합니다.

오히려 정확하지 않고 규칙도 다 어긴 이 그림이 더 깊은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이해했던 통찰력있는 화가들 -

마티스와 피카소는 위대한 예술가로 남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수파의 시작

1905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이 전시회 한 가운데 소년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소년 조각상이 야수들에게 둘러싸인 것 같다고 비아냥거렸고, 이 비평이 야수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마티스는 야수파라는 이름이 나쁘지 않았었는지,

자연스럽게 야수파, 야수주의란 용어를 받아들이고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무언가의 정확한 색보다는 주관적인 색을 표현하려고 애썼지요.

이 작품은 모델이 된 아내도 싫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티스는 아내와 다투다가 아내의 얼굴에서 차가운 파랑도 보았고, 붉은 빨강도 보았습니다. 그 주관적인 감정의 색을 표현했습니다.

마티스의 그림이 어쩌면 사진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피카소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합니다.


1914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바로 세계 1차 세계대전입니다.

그동안의 그림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마티스는 1차, 2차 세계 대전을 그 중심에서 다 겪어낸 사람입니다. 경쾌함과 밝은 에너지를 내뿜던 그림이 이렇게 어두워졌습니다. 문밖은 깜깜하고 바구니는 비어있습니다. 전쟁 중에 집이 없어지고 많은 이들이 끌려가는 걸 보았고, 심지어 동생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작품에 주관적인 감정을 싣는 작가여서일까요? 봄날의 가벼운 기쁨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신념에도 전장 속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듯합니다. .작품과 화가의 상황, 감정은 뗼레야 뗄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렇게 전쟁은 한동안 그에게서 풍부한 색과 삶의 기쁨을 빼앗아가기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놓지 않았습니다.

파리를 떠나서 프랑스남부 니스라는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면서 차츰 다시 자신의 색을 되찾아갑니다.

금새 다시 밝고 원색적이고 경쾌한 그림들로 돌아옵니다.

파란만장한 삶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을 이어간다는 게 참 존경스럽습니다. 이 예술가에게서 귀한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전쟁도 지나가고 마티스의 명성도 높아집니다.

이제 좀 편안해지나 싶을 때 가장 큰 고비를 만납니다.

바로 병이지요. 십이지장암에 걸리게 되었고 아무도 살 수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큰 수술 후 무사히 눈을 떴고 '부활한 자' 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휠체어 생활을 해야 했고, 암에다가 폐색전증까지 겹친 마티스에게 의사는 유화 물감이 몸에 좋지 않으니 사용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림이 삶의 모든 것이었던 마티스의 마음은 어떘을까요? 절망의 소식에 주저 앉아있을 마티스가 아니었습니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 있다" 고 말한 마티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었습니다. 바로 종이자르기, 컷아웃 기법입니다. 조수들에게 큰 종이에 과슈라는 물감으로 색을 칠하게 한 다음 가위로 잘라내고 붙이는 컷아웃 작품이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고난과 시련이 오히려 새로운 예술 활동의 지평을 넓혀주었습니다. 늘 어린 아이같은 그림, 단순하게 진실을 담은 작품을 하고자 했는데, 이 고난으로 인해 자신이 추구하던 것에 더 다가서게 될 수 있었습니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겐 어디에나 꽃이 피어있다."


"가위는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

"창의성의 다른 이름은 용기이다."

창의성은 곧 용기라는 말에 깊이 동의하게 됩니다. 무언가 새로운 생각을 하고 실행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비난받더라도,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용기 있게 가능한 도전을 해보는 것에서 창의성은 발휘됩니다.

"살아있는 색을 오려내는 것은

마치 돌을 쪼아서 형상을 빚는 조각가의 행위와 같다."

단순화된 형태, 본질의 특징과 생동감있는 모습으로 새를 만들기 위해 200여번의 드로잉을 통해 새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집 안에 300마리 정도의 새를 키우기도 했지요.

싹둑 싹둑 끝!

이렇게 간단할 것 같지만, 그는 마치 세심한 조각가처럼 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몸도 편히 못 가누는 병든 노화가의 말년 작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참 밝고 순수한 느낌의 작품입니다. 제목이 달팽이입니다.

작은 달팽이를 대작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바쁘고 빠른 현대 사회에서 어린 아이의 순수함으로 천천히 주변의 즐거움을 찾고 누릴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가져봅니다.


방스, 로사리오 성당

"내 인생 최고의 업적이다.

나는 이제 떠날 준비가 됐다."

 

절벽 가까이로 부르셔서

로버트 슐러

당신이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에 더 가까이 오라 하셔서

나는 더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은

절벽에 겨우 발을 붙이고 서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까지

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 마티스가 절벽 끝에 서 있을 때, 절벽 아래로 떨어질 때,

날개를 펴 예술의 지평을 넓히며 날아오를 수 있었던 것을 살펴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커를 붙여 그 뒤에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 앞에 절벽 같은 상황이 닥쳐와도 그것은 날개짓을 배우는 시간임을 기억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커를 용기있게 붙일 수 있길 소망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아버지가 강하게 반대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겠다!

내가 사는 곳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휴식 같은 그림을 보여주겠다.

전쟁 중에 집이 폐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거처를 찾아 간다!

큰 병에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이 나빠져 좋아하던 일을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와 신난다 놀자

와 재밌다 놀자

와 슬프다 놀자

와 힘들다 놀자

와 축제다 놀자

와 친구다 놀자

와 우울하다 놀자

와 행복하다 놀자

최호빈 (6학년)

나는 느릿느릿

어디를 가는 걸까?

길을 잃지 않을까?

괜찮아 지구는 둥그니깐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겠지

그러니까 계속 노력해 봐

언젠가는 네 꿈을 이루게 될 거야.

최정우 (5학년) 매거진으로 보기 글: 이금주 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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